권위 (Authority)

Pastor Jihyun D. Yi, Feb 8, 2015

누가복음 2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

이제 불과 며칠 후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그러한 급박한 상황에서도 주님은 성전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십니다 (1). 이때 주님의 설교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들이닥칩니다. 유대교의 수장인 대제사장 두 명이 서기관들과 장로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2) 이들은 복음에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밝히는 데 관심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 3 년 동안 예수님은 당신이 메시야이심을 말씀과 행동을 통해 드러내셨지만 유대인 권력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전날 일어난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정화’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눅 22:70-71). 이에 그들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찾아와 이분의 권위에 대해 따져 묻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은 지난 이천 년 인류 역사에서 중대한 이슈였지요. 어떤 이들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뛰어난 인간에 불과했다고 믿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쏟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문학가요 사상가였던 볼테르(Voltaire) 는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는 성경과 같은 책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1]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님의 존중하였고 산상수훈을 격찬하였지만 이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기는 거부하였습니다.[2] 만일 예수님이 훌륭하지만 단지 한 인간에 불과하다면 우리가 반드시 이분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정말 이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면, 정말 이분이 메시야라면, 우리는 반드시 이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분께 달려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에는 “나사렛 출신의 예수”로 알려진 이분이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대답

먼저 당신의 권위를 의심하며 질문을 던지는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은 질문에 직접 대답하는 대신 당신도 그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지십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3-4) 이 질문 앞에 그들은 긴급히 서로 의논합니다.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5) 세례 요한은 전통 유대교의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청렴하게 살며 성령으로 충만한 그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존경하였습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로 가서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누가 보아도 요한의 권위는 하늘 곧, 하나님이 주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지도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와서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면 예수님이 “그런데도 너희들은 왜 요한을 믿지 않았느냐?” 라고 물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요한의 세례가 사람으로부터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는 민중이 들고 일어나 돌로 칠 것이요, 그들은 살아서 돌아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7)

여기서 우리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사람에게서 왔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요한이 백성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는지 그렇지 않는지에 있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에게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과연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일까요? 그래서 만일 예수님의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확인되면 그분을 믿고자 하는 것일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의 권위가 어디서 오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고 기득권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진심으로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알고자 했다면 벌써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 3 년 동안 예수님은 어디를 가든지 공개적으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분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눅 4:32). 이 권위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권위이지요. 또한 주님은 일을 통해서도 당신이 누구이신지 드러내셨습니다. 갈릴리 호수의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고, 여러 맹인들의 시력을 되찾아주셨고, 심지어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과연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제사장들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자 하기는 커녕 나사로를 죽이려고 모의하였습니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기 때문이지요 (요 12:10-11).

세례 요한은 임무는 메시야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하나님은 메시야를 소개하는 임무를 맡은 그에게도 하늘의 권위를 부여셨습니다. 하물며 주인공이신 메시야 예수님이 가진 권위는 얼마나 높고 크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미 당신의 권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셨고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8)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이미 충분히 제시되었습니다. 이제 이 증거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선택입니다. 물론 그 선택에 따른 책임도 그들이 져야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권위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

누구든지 겸손히 자세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자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베드로처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그런데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의심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문제는 본문에 나타난 유대인 권력자들의 문제와 유사합니다. 우선 이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진지한 관심이 없습니다. 필요할 때만 잠시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예수님을 바로 알기는 어렵지요. 또 한 가지 문제는 어둠 곧 죄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19) 사람이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유는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분을 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보다 죄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위

조시 맥도웰 (Josh McDowell) 은 미시건 주의 Battle Creek 에서 Kellogg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닐 때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크리스천들을 모두 바보라고 생각했습니다. 맥도웰은 크리스천들이 믿는 것이 허황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책을 한 권 쓰기로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고 그런 책이 출판되면 그는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과 관련된 역사, 고고학, 고대 문학들을 조사하면서 한 권의 책만 쓰지 않고 무려 115 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모든 책들이 그리스도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라 옹호하는 책입니다. 그의 책들에서 맥도웰은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감격에 벅차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증거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하시겠지요. 성경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그는 이 특별한 책이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들을 만났던 것입니다. 결국 맥도웰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 크리스천 작가 가운데 한 명이 되었습니다.[3] 이런 예는 수없이 많습니다. 문학가든지 과학자든지 고고학자든지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해 알고자 하면 누구든지 이분이 하나님이시요,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이분의 말씀인 성경이 무오한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유명한 고고학자인 W. F. Albright 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고학적인 데이터들은 구약 성경의 셀 수 없이 많은 구절들이 역사적으로 사실임을 증명하여 왔다”[4]

스위스의 의사였던 Paul Tournier가 쓴 책들은 20세기 중반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크리스천들의 내적치유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저는 최근 그가 쓴 유명한 책 “모험으로 사는 인생” 을 사기 위해 amazon.com 들어갔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이미 그 책은 절판되었습니다. 이처럼 베스트 셀러가 된 책도 50 년을 넘기지 못하고 절판됩니다. 고전이 되어 남는다고 해도 소수의 사람들에게 가끔 읽히는 책으로 남아 있게 되지요. 성경은 완성된 지 거의 2,000 년이 된 책입니다. 이렇게 오래된 책은 절판되어도 벌써 절판되어서 박물관이나 특별한 도서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것이 정상이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오늘도 출판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다른 책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언어로 번역이 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수가 출판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오늘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책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단언하셨지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막 13:31) 2,000 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명백한 사실임을 목도합니다.

볼테르는 18 세기의 사상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는 문학, 철학, 예술 심지어 과학에까지 방대한 지식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기독교를 공격하면 100 년 안에 성경이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50 년이 지났을 때 그가 살았던 집 가운데 하나가 인쇄된 성경을 보급하기 위한 창고가 되었습니다.[5] 200여 년 전에 극찬을 받았던 볼테르의 책들은 오늘날 사람들의 기억에서 이미 잊혀졌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가끔 그의 책을 읽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오늘도 변함없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읽히고 또 읽히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은 1,500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40 명의 저자들에 의해 세 가지 언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6 권의 책들은 마치 한 사람의 저자가 기록한 것처럼 주제가 일치하며 서로 조화를 이룹니다. 성경을 제외하고는 세상에 이런 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66 권의 성경은 한 분에게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거는 충분합니다. 성경이 그분의 말씀이라는 증거도 충분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분에게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겸손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를 때, 오직 그때만 우리는 생명을 얻고 점점 더 풍성히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우리의 귓가에 울리고 있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막 13:31)

 

[1] Thomas F. Heinze, How Life Began, Chick Publications, Ontario, CA, (2002) Kindle Edition.

[2] Philip Yancey, Soul Survivor, Doubleday, New York, (2001) Kindle Edition.

[3] Thomas F. Heinze, How Life Began, Chick Publications, Ontario, CA, (2002) Kindle version.

[4] Ibid.

[5]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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