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하기 위해 온 사람들 (Those Who Have Come to Worship)

Pastor Jihyun D. Yi, Dec 21, 2014

마태복음 2:1-1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2)

테리 폭스 (Terry Fox)를 기억하십니까? 브리티쉬 콜럼비아 주에서 장거리 달리기와 농구 선수로 활약하던 그는 Simon Fraser University에 재학 중인던 1977 년 골육종 진단을 받고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습니다. 하지만 테리는 절망하지 않고 의족을 차고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1980 년 그는 암 연구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캐나다를 횡단하는 달리기 이른바 “희망의 마라톤 (Marathon of Hope)” 을 시작했습니다. 캐나다의 동쪽 끝인 뉴펀들랜드의 세인트 존에서 출발해 서쪽 끝인 브리티쉬 콜럼비아의 빅토리아까지 달려가는 8,000 km의 대장정이었습니다. 그가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자연도 무관심한지 돌풍과 폭우가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하지만 폭스는 굳굳히 달렸습니다. 의족을 한 채 달리고 있는 그에게 점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고 폭스가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는 국민적인 영웅이 되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달리는 동안에도 암은 그의 몸 속에서 퍼지고 있었고, 5,000여 km 를 달려 Thunder Bay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달릴 힘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용기에 감동을 받아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였고 놀랍게도 폭스가 처음 목표로 잡은 2,400 만 달러에 가까운 거액의 펀드가 만들어졌습니다. 한 다리로 그것도 암을 지닌 채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암 연구 기금 모금이라는 분명하고 의미있는 목표가 있었을 때 폭스는 5,000 km 이상을 달려갈 수 있었습니다.[1]

길이 험하고 멀어도 목표가 분명하면 사람들은 인내하면서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나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값비싼 비행기 표를 아까워하지 않고 먼거리를 날아갑니다. 서부개척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캘리포니아로 몰려갔었지요. 내셔널 지오그래피 사진작가들은 야생동물을 촬영하기 위해 북극권으로도 들어갑니다. 멀고 험한 길을 마다 않고 가는 사람들의 목표는 예외없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금을 찾고, 원하는 동물을 촬영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 장은 약 2,000 년 전에 먼 동방에서 이스라엘을 찾아온 현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속도로나 철도가 없던 그 당시 장거리 여행은 쉽지 않았지요. 강도를 만날 위험도 컸습니다. 더군다가 그 여행은 한 특별한 별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현인들은 적어도 수 개월에서 일 년 동안 걷거나 낙타를 타야 했습니다. 이렇게 멀고도 어려운 길을 간 끝에 그들의 목표인 한 아기를 만났습니다. 그 아기는 그들의 아들이나 손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의 아기였습니다. 이 아기 덕분에 현자들이 보물을 얻는다는지 로마 원로원과 연결되어 출세의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현자들은 아기나 그 가족에게 무엇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지고 있던 유동자산인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현자들이 한 것은 아기에게 “경배 (to worship)“한 것이 전부입니다. 그들은 “경배“하기 위해 그 먼길을 왔던 것입니다. 도대체 ‘경배‘가 무엇이길래 현자들이 이를 위해 수고와 위험을 무릅썼을까요?

1. 경배와 그리스도

헤롯 대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던 때에 예수님께서 유대 지방의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한 아기가 되어 이 땅에 오신 인류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헤롯도, 서기관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에 무관심하였습니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동방에서 온 현자들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2) 그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왔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세상 만민을 구원할 그리스도의 다른 이름이지요 (렘 23:5, 스 9:9). 약 33 년 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빌라도가 십자가 위에 걸었던 팻말에도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 (27:37) 라고 기록되었지요. 박사들은 이방인들이었지만 구약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한 부분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사람들이 그 먼길을 달려온 목적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현자들은 그들의 구원자요, 만민의 구원자인 그리스도가 오셨음을 알았고, 그에게 경배하고자 온 것입니다.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왔다는 말에 예루살렘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3) 헤롯은 정통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로마의 권력을 힘입어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박사들의 말에 그는 마치 쿠데타라도 일어난 것 처럼 바짝 긴장하였습니다. 포악한 헤롯이 심기가 불편해지니 백성들은 노심초사하였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헤롯은 대책을 세우고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4b) 이에 그들이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며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5-6) 미가 선지자의 예언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잘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는 만민의 왕이시며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다스리시되 선한 목자가 양을 돌보는 것처럼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에게 경배한다는 것은 곧 그분을 나의 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분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스도를 경배할 때 그분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상처에서, 우울함에서, 외로움에서, 무의미에서 구원하시고, 심지어 죽음에서도 구원하십니다.

그리스도를 경배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아무 것도 경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경배합니다. 헤롯 대왕이 무엇을 경배하고 있는지 살펴볼까요? 그는 현자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렇게 부탁하였습니다.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8) 그리스도께 경배해야 한다는 사실은 그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경배를 거부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없애버릴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대신 “권력”을 경배하고 있었습니다.

2. 경배와 순종

현자들의 여행은 특별한 안내자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2b) 어느 날 현자들은 밤하늘을 관찰하던 중 특별한 별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 별을 따라가면 메시야를 만날 것이라는 깨달음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계시였습니다. 그때부터 동방 박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뜬금없이 별을 따라 먼 길을 떠난다고 했을 때 가족과 친구들은 그들을 정신나간 사람들 취급했을 것입니다. 네비게이션이라면 또 모를까, 별을 따라가는 여행은 불확실하고, 위험하고, 낭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먼 길을 인내하며 성실하게 별을 따라왔고 마침내 아기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별, 곧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인을 따라 간다는 것은 곧 주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경배한다면 그분께 순종해야 합니다.

현자들이 아기 그리스도를 만나 경배한 후에 주님은 꿈을 통해 그들이 헤롯에게도 돌아가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헤롯 대왕은 현자들이 아기를 찾으면 곧 자기에게 돌아와 보고하라고 지시하였었지요. 이스라엘 땅에서 헤롯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경배의 절정은 순종입니다. 순종 없이 경배하지 못합니다.

3. 경배와 기쁨

먼 길을 여행하여 메시야를 만나러 왔지만 갑자기 나타난 헤롯이라는 훼방자 때문에 현자들은 길을 잃고 헤맬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9) 잠시 보이지 않았던 그 별이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들을 아기 있는 곳으로 인도합니다. 다시 별을 찾은 박사들의 기쁨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0) 그들의 큰 기쁨은 헤롯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동함”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 기쁨은 그들이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그 어떤 기쁨보다 큰 기쁨이었습니다.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쁨이요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입니다. 누구나 그리스도께 경배할 때 이런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경배의 열매는 이와같이 큰 기쁨입니다.

현자들은 이러한 하늘의 기쁨 가운데 집에 들어가 아기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온 최고의 선물을 드립니다. 이들이 드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아기 예수님 가족이 헤롯의 칼날을 피하여 이집트로 가서 몇 년을 살아야 했을 때 요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것을 예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내가 최고의 것을 서로 주고 받는 , 이것이 경배의 핵심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동방 박사들처럼 이렇게 예배드릴 때 그들이 경험했던 큰 기쁨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4. 경배자를 찾으시는 그리스도

5 년 전 성탄절을 앞두고 제자교회가 창립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로 회복되어 글로벌 선교로 나아가는 교회” 입니다. 북미의 이민 교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가운데 하나가 한인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앞세우다가 “그리스도의 교회”로서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에 우선권을 둔 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며 곧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자입니다. 지금도 이 비전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주된 관심은 이곳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경배자가 되어 동방 박사들과 같이 큰 기쁨을 얻고 나누는 것입니다.

몬트리얼에 이민 오신 가정들은 대부분 부모와 자녀 사이에 언어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태어났거나 어렸을 때 온 자녀들은 한국어에 서툽니다. 반면 부모님들은 영어나 불어가 익숙하지 않지요. 그래서 소통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부모와 소통이 되지 않는 2세들 중에서는 이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소통이 이루어질까요? 양쪽이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내 아이와 소통하려면 아이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지 내가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자녀들도 부모님과 소통하려면 한국어를 배우던지 부모님이 영어를 배우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서로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원리가 우리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우리의 뿌리가 대부분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은 한국어가 편하고 어떤 분은 영어가 편합니다. 우리 자녀들 가운데는 불어가 더 편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모인 한 분 한 분은 모두 소중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분들을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인도하고 양육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를 사용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언어는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고 제자로 자라도록 배려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은 그분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분을 어떻게 경배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을 알기 위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규모는 작지만 한국어, 영어, 불어로 성경 공부를 제공할 수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 열리는 불어 성경공부에서 최근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참여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불어가 짧은 분들인데 저는 이분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드리고 불어로 외우도록 격려했습니다. 얼마 후 한 분이 이렇게 간증하셨습니다. “지난 주에 하루는 새벽 1 시에 눈이 떠지더니 성령님의 강권하심을 따라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어요. 계속 외우다 보니 금방 일곱 시간이 지나가더라고요. 외우며 기도하는 동안 성령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어요. 특별한 체험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불어 성경공부를 기뻐하신다는 확신이 들어요.” 감사한 일이지요. 이제 1월부터는 전도를 위해 영어 성경공부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성경별로 또는 주제별로 다양한 성경공부가 준비되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을 내어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딤후 4:1-2a) 주위를 둘러 보시면 여러분이 소통하기 편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말씀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분들을 성경공부에 초대하고 예배에 초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심을 바치면 성령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약 20 세기 전 동방에서 베들레헴으로 그 먼길을 달려 왔던 현자들. 그리스도는 그들의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오늘 몬트리얼에서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진심과 열정과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 경배해야 할 유일한 분이십니다. 우리 교회가 명실공히 “제자들의 교회”가 되도록 그리고 “경배자들의 교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합심하여 교회를 세워 나가야겠습니다.

[1] Terry Fox, Encyclopedia Britannica,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1315949/Terry-F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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