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과 사랑 (Impossibility and Love)
Pastor Jihyun D. Yi, Nov 16, 2014
누가복음 18:24-30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7)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25)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부 (wealth)’를 하나님이 주신 복 가운데 하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 앞에서 부담을 느끼며, 어떤이들은 이 말씀 때문에 크리스천이 되기를 주저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고자 시도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성문 옆에 “바늘귀 문”이라는 이름의 작은 문이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만일 그런 문이 있었다면, 낙타가 그 작은 문으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먼저 등에 실은 짐을 다 내리고 다이어트를 해서 몸집을 줄여야 하겠지요. 낙타가 “바늘귀 문”을 통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두번째는 밧줄 (kamilos) 이라는 헬라어 단어를 이와 유사한 낙타 (kamelos) 로 잘못 기록했다는 주장입니다.[1] 본래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밧줄이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 성경 기자의 실수로 밧줄이 낙타로 둔갑했다는 주장이지요. 밧줄이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커다란 바늘을 고르고 가느다란 밧줄에 기름을 칠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권위있는 학자들에 따르면 바늘귀를 “바늘귀 문”으로 해석하거나, 낙타를 밧줄로 바꾸려는 시도는 모두 본문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입니다.[2]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시는 바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말이지요.
그렇다면 모든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난해져야만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바로 앞서 일어난 사건부터 살펴 보아야 합니다.
어떤 관리가 예수님을 찾아와 이렇게 물었지요.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이 사람은 젊은 나이에 유대 사회에서 고위직에 올라 있었고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이 사람이 영생을 찾아 예수님에게 온 것을 보면 그의 내면에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생명다운 생명을 누리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질문에 예수님은 십계명을 지키라고 권고하셨습니다 (20).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 의외의 대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자 진심으로 애를 써 본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대답이지요. 그의 대답에는 교만까지 묻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선대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22) 주님은 그 사람의 문제를 정확히 아셨습니다. 그는 재물에 묶여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에게 참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인생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진심어린 충고를 하셨습니다. 그가 진정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누구나 재산을 다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이어지는 눅 19 장에 등장하는 삭개오의 경우를 보면 이를 알 수 있지요.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부르실 때 그의 재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 후 삭개오가 자원하여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말했지요. 주님이 부자 관원에게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하신 것은 이사람의 경우 그렇게 하지 않고는 주님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충고를 들은 관원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23) 그 사람은 매우 슬퍼하다가 발길을 돌려 떠났습니다 (마 19:22).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믿고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영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은 여기서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를 보시며 예수님은 탄식하듯이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24-25) 옆에서 듣고 있던 제자들이 근심어린 목소리로 묻습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6) 이에 주님이 대답하십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7) 주님은 분명히 “사람은 할 수 없다 (impossible)”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부자 청년이 재물을 내려 놓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 (wealth) 는 잘 다루지 않으면 예수님을 따르는 데 상당한 장애물이 되지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그 지식 때문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그 상처 때문에 예수님을 피합니다. 오십보 백보의 차이는 있지만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습니다 (엡 2:1). 죽은 자가 스스로 일어날 수 없듯이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은 관원이 재물에 묶여 있어 당신을 따르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에게 재물을 내려 놓고 당신을 따르라고 간절히 초청하셨습니다. 마음이 이미 떠난 사람을 붙잡고 설득하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힘든 일이지요. 불가능하면 포기하시지 왜 도전하시고 당신을 따르라고 간절히 초청하실까요? 그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막 10:21에 따르면 주님은 그 청년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셨기 때문에 주님은 불가능에 도전하셨습니다.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생후 4개월이었을 때 심하게 배앓이를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동네 병원에 데리고 가니 소화불량이라며 약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병은 더 심해졌습니다. 대학 병원에 데리고 가니 장중첩증이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의사들은 너무 늦게 왔다며, 수술을 해도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이런 대수술을 받으려면 거액의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빠듯하게 살아가는 서민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아이가 수술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거의 불가능함을 알지만 부모님은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랑 때문에 제 부모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할 때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도전합니다. 사랑할 때 포기하지 않지 않습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6)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지요,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7)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찾지도 않습니다 (롬 3:10-19). 하지만 하나님은 불가능하다고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핵심이 바로 독생자로 하여금 인류의 죄값을 대신 받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바로 다음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십자가 형을 당하고 삼 일만에 살아날 것을 예언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지요 (31-34).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은 사건은 켤코 예삿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가운데서 일어난 기적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다만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님이 일방적으로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셨고, 다만 우리는 그 선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격적으로 이렇게 말했지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
1998 년 연말, 저의 마음이 몹시 무거웠습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여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에 들어와 보니 취직하기가 몹시 어려웠습니다. IMF의 휴유증이었지요. 한 살과 다섯 살 된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 무렵 개봉한 “이집트 왕자” 라는 애니매이션을 보게 되었는데 한 장면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것은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물 벽 사이로 난 길로 바다를 건너는 장면이었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였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홍해를 가르셨다는 사실이 강하게 저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순간 한 가지 깨달음이 왔습니다. “아,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신 일이 홍해를 가르신 것에 견줄 만큼 큰 일이었구나! 하나님께서 불가능한 가운데 나를 구원하셨구나!” 다들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있는 극장에서 저만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격과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값을 치르시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나의 직장 문제를 모른 체 하실 리 없다는 믿음이 생기자 마음에서 불안이 물러갔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큰 값을 치르시고 저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은 이후로 제 영혼의 닻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주님은 제게 좋은 직장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던 베드로가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합니다.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8) 베드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훌륭한 결단을 하였습니다. 본래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그를 찾아오셨고 손을 내밀어 그를 초청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한 것은 다만 믿음으로 주님의 손을 잡은 것이지요. 복음서에 기록된대로 베드로는 이후에 커다란 시험에 빠집니다. 예수님이 권력자들에게 체포되시자 그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신자의 성장도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함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함께 일을 하다가도 서로 의견이 달라 마음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다른이의 실수에는 예민하면서 나의 실수에는 둔감합니다. 저도 성장이 더딘 제 모습을 보면서 탄식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희망을 줍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7) 우리는 “내게 능력이 없음”을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당신의 방법으로 우리를 키우십니다.
끝으로 주님이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29-30) 당시 유대 사회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가족과의 관계가 끊어질 각오를 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캐나다나 한국에서도 우리가 예수님을 분명히 따르고자 하면 가족 구성원들과 갈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가족 관계가 깨어지더라도 분명히 예수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내 가족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피로 연결된 이 새 가족은 우리의 생각보다 크고 놀라운 복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1] Stein, R. H. Luke (Vol. 24).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2, (Logos Bible eBook Version).
[2] Bock, D. L.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1996, p. 468; Butler, T. C. Luke (Vol. 3).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2000, (Logos Bible eBook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