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사랑 (The Two Loves)

Pastor Jihyun D. Yi, Dec 28, 2014

 고린도전서 13:1-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4-7)

필요의 사랑

제가 대학 생활을 하던 1980 년대 중반 어느 연말에 크리스천 친구들과 함께 초콜렛을 팔아 모은 돈을 가지고 경기도에 있는 한 고마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은 보통 고아원이 아니라 정신 지체아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니 아이들은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곧 다가와 안기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저는 그때 그 아이들이 얼마나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고,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하는지를 보았습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가 선물로 가지고 간 과자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받고 싶어했고, 우리가 함께 놀아주기를 원했습니다. 그 아이들은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맛있는 과자에 주려 있었지만 과자보다도 사랑에 더 주려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랑과 돌봄이 필요한 그 아이들 곁에 한 두 시간 밖에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것이 무척 미안했기에 저는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그후 크리스천으로서 성장해 가면서 저는 ‘사랑’에 대해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 고아원 아이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모두 사랑에 주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다른이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합니다. C. S. 루이스는 이러한 사랑을 ‘필요의 사랑 (Need-love)’라고 불렀지요.[1] 아기는 배가 고프거나 무서울 때 엄마를 찾습니다. 아기는 엄마를 필요로 합니다. 아기가 엄마를 향해 가지고 있는 사랑은 ‘필요의 사랑’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필요의 사랑은 다른 말로 ‘받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세 젊은이들이 친구가 되어 함께 공부하고 함께 여행도 다니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들이 왜 함께 있을까요? 함께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보다 휠씬 편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지요. 이들의 우정은 ‘필요의 사랑’이라는 토대 위에 놓여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되면 많은 젊은이들이 외로움을 느끼며 연인을 얻기 원하지요. 물론 사랑은 주고 받는 것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대부분 필요의 사랑에 기초해 결혼을 합니다. 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지요. 교회에서도 사람들은 다른이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합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할 친구를 찾고, 고민을 들어 줄 사람을 찾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의 사랑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에 옵니다.

필요의 사랑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바쁜 아빠에게 놀아 달라고 보챌 때 우리는 그 아이를 이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를 찾는 어른을 보고도 우리는 그가 이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2] 남편이 외로움을 느끼며 아내에게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할 때 우리는 그 남편을 연약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편이 아내에게 말하기를 “사실 나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 당신의 사랑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어. 내가 당신과 함께 사는 것은 다만 당신에게 사랑을 주고 싶기 때문이야 “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남편을 고상한 사랑을 가진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좀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필요의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받기 원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사랑’에 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 장’으로 알려진 고전 13장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필요의 사랑’과는 다른 사랑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바울의 설명을 들어보겠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4-7) C. S. 루이스는 이 사랑을 ‘선물의 사랑 (Gift-love)’라고 불렀습니다.[3] 선물의 사랑의 대표적인 예는 부모가 자녀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일하고 저축하는 사랑일 것입니다. 이 사랑은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이지요. 우리는 선물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어렵게 모은 전재산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내놓습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를 위해 자신의 신장을 하나 떼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드물게 일어납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선물의 사랑’보다는 ‘필요의 사랑’을 하며 살아갑니다. 사랑을 주기보다 받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반복해서 ‘선물의 사랑’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고전 13:4-7에서 바울은 열다섯 가지 ‘선물의 사랑’의 속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1. 사랑은 오래참고Love is patient: 단순히 어떠한 상황을 오래 참는 것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사랑은 온유하며love is kind: 친절하게 다른이를 대하는 것이며 심지어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자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It does not envy:
  4.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it does not boast: 근거없이 부풀려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5. 교만하지 아니하며it is not proud: 과도히 자신을 신뢰하며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교만이지요. 사랑은 이런 교만과는 거리가 멉니다.
  6.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It is not rude:
  7.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it is not self-seeking:
  8. 성내지 아니하며it is not easily angered: 쉽게 화내지 아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9.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it keeps no record of wrongs: 상대방이 나에게 악을 행해도 그 악을 자세히 기억하지 않는 것이며, 쓴뿌리를 품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10.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Love does not delight in evil: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와 악은 거절하며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11.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but rejoices with the truth: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진리를 따라 살기를 원하며, 그렇게 될 때 기뻐하는 것입니다.
  12. 모든 것을 참으며It always protects: 이는 문자적으로 “모든 것을 덮어서 숨기다”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해를 끼치더라도 그 사람의 잘못을 드러내지 않고 덮어서 숨긴다는 뜻이지요.
  13. 모든 것을 믿으며always trusts: 어떤 사람을 사랑으로 대할 때 그 사람이 미덥지 못한 부분이 있어도 힘써 믿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14. 모든 것을 바라며always hopes: 어떤 사람을 사랑으로 대할 때, 그 사람의 미래에 소망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이 희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리스도를 보고 소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15.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always perseveres: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현재 그 사람이 미숙하고 넘어져도 참고 기다려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가능한 사랑이 아닐까요?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과연 우리가 이런 열다섯 가지 특징으로 표현되는 ‘선물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은 “예 물론입니다. 사랑할 수 있고말고요”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를 배신하고 내게 악을 행하여도 모든 것을 참으며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되 이와같은 사랑, ‘선물의 사랑’으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핏줄을 나눈 가족 사이에서도 이런 사랑으로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교회에서 형제 자매들을 ‘선물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이렇게 단언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3) 우리가 아무리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많은 성경지식을 가졌더라도 ‘선물의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구제하고 헌신적으로 교회에서 봉사할지라도 ‘선물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과연 성경이 불가능한 이상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전 13장을 읽을 때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13:4-7 앞에 ‘그리스도’를 첨가해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4-7)

지난 한 해를 돌아볼 때, 예수님은 저를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저는 번번히 실수하고 넘어졌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저를 항상 온유함으로 대하셨습니다. 언제나 저의 회개를 받아주시고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제게 모든 것을 허용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제가 불의에 가까이 하면 이를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진리를 따르도록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꾸짖고 깨우치셨습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어떤 때에는 한계에 부딪혀 주님께 불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님, 이렇게 연약하고 준비가 안된 저를 왜 부르셨습니까?”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저를 끝까지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제게 끝까지 소망을 둔다고 하셨습니다. 끝까지 참고 기다려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7) 그리스도의 이러한 사랑을 잘 받으니 제 영혼이 소생했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 두신 사람들을 이런 사랑으로 사랑할 힘을 조금씩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선물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첫째: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주님의 사랑을 규칙적으로 읽고 묵상하고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공부하는 첫째 목적이 바로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알고 더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둘째, 고전 13:1-7 에 기록된 ‘선물의 사랑’ 곧 ‘주는 사랑’을 힘써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교회에 모이는 주된 목적이 “받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곳이며 동시에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을 드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다른 성도님들이 준비해 놓은 것을 받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나도 다른 성도님들에게 사랑과 관심과 도움을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우리의 뼛속까지 심겨져 있는 “자기 중심적인 생활방식”이 크게 도전을 받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주는 사랑을 실천에 옮기고자 할 때 당장에는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우리의 생명이 풍성해지는 길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 6:38) 새해에 우리는 전도와 봉사와 구제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주는 사랑”을 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1] C. S. Lewis, 네 가지 사랑, 홍성사, 2005, p. 13.

[2] Ibid., p. 15-16.

[3] Ibid., p.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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