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릴 때에 (When I was hungry)

Pastor Jihyun D. Yi, Nov 23, 2014

마태복음 25:31-46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5)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미국인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요. 북미에서 사람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선물이 무엇일까요? 아이폰 6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강아지를 선물로 기대하기도 합니다. 여성들은 보석을 선호하지요. 그런데National Retail Federation 에서 설문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이 모든 것들보다 압도적으로 인기있는 품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물 카드 (gift card)’입니다. NRF 는 올해 미국인들이 각종 선물 카드를 사는 데 317.4 억 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1] 여러분은 이번 성탄에 어떤 선물을 받기 원하십니까? 혹시 고액권의 선물 카드를 기대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오늘 본문은 심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씀은 “어떻게 하면 최고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알려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마지막 때에 있을 세계적인 심판의 한 부분을 미리 보여 줍니다. 먼저 누가 재판장입니까?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1) 인자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영광스럽게 당신의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셔서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이 보좌는 우주의 주인의 보좌이며 재판장의 보좌입니다. 누가 심판의 대상입니까?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32a) 인류의 전체입니다. 창세로부터 마지막 때까지 지구상에서 산 모든 사람들입니다. 심판은 어떻게 진행됩니까?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2b-33) 재판장은 재판석에 선 사람들을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실 것입니다. 각 사람을 구분하여 의인들은 그 오른편에 의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 왼편에 둘것입니다.

왕이 먼저 당신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판결문을 낭독합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4) 왕은 이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께 복을 받는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당신께 “나아와 (come)” 창세로부터 그들의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하십니다. 오른편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상속자임이 공포됩니다. 이 사람들은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이 준비하신 나라를 상급으로 받게 됩니다. 판결문을 계속 듣어볼까요? 왕은 이제 이 사람들이 왜 당신의 오른편에 설 수 있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5-36) 왕의 말씀을 들으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이 놀란듯이 이렇게 묻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37-39)

그들은 왕이 배고팠을 때 먹인 적도 없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한 적도 없으며, 헐벗었을 때 옷을 입힌 적도 없고, 병들었을 때 돌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40) 왕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주린 이들을 먹였고, 나그네들을 영접하였으며 병든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들이 바로 당신을 먹였고, 영접하였고, 돌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극히 작은 한 사람을 도와준 것도 당신을 도와준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중요하고 귀한 일이지만 구원의 조건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선한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요 (엡 2:8-9).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일 어려운 사람들을 돕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야고보서 2:14-17 은 이렇게 말씀하지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 세상에는 영적으로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나그네가 되어 유리하고 병들고 갇힌 자들이 즐비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또한 육적으로 주리고 헐벗고 나그네 되고 병든 사람들이 널려있습니다. 우리는 힘 닿는대로 이들을 먹이고 입히며 영접하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재산과 마음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습니까? 평소에 이런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가 연말에 약간의 기부를 하는 정도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처신할 때 마지막 날 우리가 과연 주님의 오른편에 설 수 있을까요? 만일 우리가 영적으로 주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가 아직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육적으로 헐벗은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고 있다면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고, 헐벗을 때에 옷을 입히고, 병들 때 돌보고, 옥에 갇힌 때에 방문하는 것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라” 는 말씀을 반복하셨지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 6:38) 예수님은 왜 이처럼 “주는 것”을 강조하실까요? 헨리 나우웬의 삶을 예로 들어 “주는 것”의 중요함을 살펴 보겠습니다.

나우웬은 네덜란드에서 심리학자와 신학자로 훈련을 받을 후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심리학과 기독교를 연결하는 분야의 선구자로서 탁월한 업적을 쌓았습니다. 노트르담 대학과 예일 대학에서 교수로 가르치는 동안 그는 열여섯 권의 빼어난 책을 썼습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요 작가가 되었습니다. 강연 요청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내면은 메말라갔고, 경쟁과 스트레스로 인해 그의 영혼은 힘을 잃어갔습니다. 그는 교수직을 사직하고 남미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페루의 가난한 사람들에 비하여 나우웬은 가진 것이 휠씬 많았습니다. 그는 자선 기관의 힘을 빌어 그들에게 양식을 줄 수 있었고, 복음을 전해 줄 수 있었고 해박한 지식으로 상담을 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우웬은 가난한 그 땅에서 예상치 않았던 소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은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일 뿐 아니라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들과 지내면서 나우웬은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했고, 스트레스로 인한 상처에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러 갔던 그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받고 돌아왔지요. 6 개월 후 나우웬은 하버드 대학에서 제시한 새로운 자리를 받아들이고 다시 교수로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다가 3 년 후 그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토론토에 있는 신체 및 정신 지체 장애인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 (Daybreak)’ 로 갔습니다. 나우웬이 마지막 10 년을 보낸 이 공동체는 지속적인 도움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를 흠모하는 수많은 청중 앞에서 강연하는 데 익숙했던 나우웬은 평범한 단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늘 침을 질질 흘리는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해야 했습니다. 거주자 중 빌이라는 사람은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우웬이 설교 하는 도중에 그 사실을 밝혔습니다. 나우웬이 볼보아야 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애덤이라는 20 대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장애가 심해 말을 하지 못했고, 혼자서는 옷을 입을 수도, 걸을 수도, 심지어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나우웬은 매일 여러 시간을 할애해서 애덤이 씻고, 옷을 입고,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던 사람이 제정신을 못차리고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우웬은 애덤을 도와주면서 은혜를 입는 쪽은 애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임을 서서히 배워갔습니다. 애덤에게 시간을 주고 사랑을 주면서 나우웬은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정신 장애인과 다름없이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 기이한 사랑을 그는 온 몸으로 체험하였습니다. 나우웬은 데이브레이크에 와서도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 나우웬의 독자들은 그가 이 장애인 공동체에서 보낸 기간 동안 쓴 책들이 이전의 것들보다 더 깊이가 있고 더 유익함을 알게 됩니다. 그가 하버드 대학을 뒤로하고 데이브레이크로 들어간 일은 외부에서 보면 매우 고상하고 희생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우웬 본인이 여러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는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얻기 위해서, 남아서가 아니라 부족해서 그곳으로 갔습니다. 생명이 풍성하게 흘러 넘쳐서 나누어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데이브레이크로 갔습니다. 그가 가진 것을 적극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주면서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는 것을 통해 그는 살아났고, 성장했고, 사랑으로 가득차 있는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2]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제 왕께서 왼쪽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선포하는 판결문을 들어보겠습니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1) 그들은 주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불에 들어갈 것입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이 이렇게 심판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42-43) 그들이 놀란듯 묻습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4) 이에 임금이 대답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45) 왼편에 있는 자들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무관심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무관심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에게도 무관심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심판을 받는 근본 이유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의 왕이 되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 보면 그리스도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분들을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린 자들에게 빵을 나누어 줄 수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영혼이 주린 자들을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나누어 주지는 못합니다. 왕은 끝으로 분명히 선포하십니다.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46) 그리스도에게 무관심한 자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기를 거절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그리스도와 영원히 분리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이고 따른 자들만이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내게 여유가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직장에서 어려움이 많아서, 학업으로 너무 바빠서 지금은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 옆에 있는 주린 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내 옆에 있는 외로운 나그네 한 사람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영적, 육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당신과 동일시 할 만큼 그들을 아끼십니다. “주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가 다 헨리 나우웬과 같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데이브레이크와 같은 곳으로 가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의 분량에 맞게 “주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실제로 주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미 시작하신 분들은 더 적극적으로 주어야 합니다. 주어야 우리가 살아납니다. 주어야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주어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서 받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지요.

우리는 새 예배당으로 이전하여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기도하고, 의논하며 실행에 옮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머지 않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행 20:35)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체험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National Retail Federation, Nov 13, 2014.

[2] Philip Yancey, Soul Survivor, Doubleday, New York, 2001, Kindle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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